달이 부서진 밤


정명섭 | 미스터리

DETAILS

달이 부서진 밤




한국 좀비문학을 이끌어온
정명섭의 본격 괴이 시대극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서 정명섭 작가가 ‘좀비 능력자’로 출연했을 때 어떤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 어떤 독자들은 갸우뚱했다. 좀비를 소재로 한 다양한 국내외 작품뿐만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좀비와 맞닥뜨렸을 때 주의할 점’과 같이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쏟아낸 작가는 사실 영화 [부산행], [월드워 Z]에서 홍보 패널로 활약하는 등 관련 이슈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좀비물 전문가다. 장르문학계에서는 드물게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역사 추리소설, 역사 인문서, 장편 창작동화 등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한편, 집필 외에도 강사, 답사가로 출판계는 물론 방송, 학회를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 중인 정명섭 작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장르에 집중하여 오랜 준비 끝에 본격 괴이 시대극을 표방한 장편소설 《달이 부서진 밤》을 내놓았다. 가상 역사와 좀비물의 결합이라는 시도는 두 영역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길을 닦아온 작가의 어쩌면 필연적인 결실이다.
사실 좀비라고 명확하게 지칭되지 않을 뿐, 부두교의 가사 상태 노예를 비롯한 모든 문화권에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 산 사람 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설화가 존재한다. 작가는 조선의 학자성현이 민간 풍속과 문화 전반을 정리하여 집필한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좀비와 비슷한 존재에서 영감을 받아 본작을 구상했다고 한다. 또한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배치하여 극의 사실감을 더하는 한편,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고구려와 그 멸망을 좀비물 전문가답게 장르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빌딩 숲이 아닌 계곡 속 버려진 초가집에서 양복 대신 도포를 입고 총과 폭탄이 아닌 칼과 활로 ‘살아 있는 시체들’과 맞서 싸우는 《달이 부서진 밤》 속 상황은 장르적 재미를 주면서도, 다수 영상물의 성공으로 대중적으로도 익숙한 좀비라는 소재를 보다 신선하게 느끼도록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장르적 상상력으로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을 새로이 쓰다

서기 264년 고구려는 위와의 전쟁 중 수세에 몰리자 적진에 들어가 항복하는 척하며 적장 현도태수 왕기를 죽이려는 회심의 계책을 실행한다. 동천왕이 아끼는 장수 유유가 나섰지만 실패로 끝나고 그는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유는 다시 살아나더니 무수한 창과 칼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군을 맨손으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이에 동천왕은 승리를 거둔다. 세월이 흘러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부흥군 세활과 부하들이 요동에 위치한 계곡 입구에 당도한다. 열이 채 안 되는 소수의 그들은 지금은 함락된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장군을 찾기 위해 그가 몰래 숨어 산다고 전해지는 ‘망월향’을 찾아온 것이다. 과거 연개소문의 정변과 당 태종의 침략에도 자신의 성과 성민을 지켜냈던 양만춘을 구심점 삼아 고구려를 다시 일으킬 희망을 안고 망월향에 발을 들이는 세활은 부하 중 당에 복속한 연개소문의 맏아들 남생이 심어놓은 간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에 마음이 편치 않다. 계곡 안은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대는 안개로 가득하고, 그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물에 의해 세활의 부하들은 습격을 받는다. 칼에 찔려도 고통은커녕 피조차 흘리지 않는 불사의 몸, 오직 안개 속에서만 움직이는 그들을 피해 계곡 밖으로 도망친 세활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적 말갈족 무리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세활을 할 수 없이 다시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으며 절망한다.
《달이 부서진 밤》은 고구려 부흥의 마지막 희망인 양만춘을 찾기 위해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계곡으로 들어가는 세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로 양만춘은 당 태종 이세민의 눈을 활로 맞히는 등 온갖 활약과 고초 끝에 자신의 성을 지켰고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 이후에도 몇 년간 저항을 계속하다가 671년이 되어서야 당에 점령당한다. 우리에게 가깝고 익숙한 조선이 아닌 삼국시대 후기,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것은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맞닿아 있던 때였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고구려 사람들은 망월향 계곡을 가득 메운 안개 속에서 죽었지만 살아 있는 ‘그것들’ 혹은 ‘괴물들’과 닮았다는 것이다. 물론 《달이 부서진 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알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 힘든 강력한 페이지 터너로, 마지막 진실의 문턱을 넘었을 때 독자가 느낄 재미와 쾌감은 상당하다. 《달이 부서진 밤》은 한국 장르문학의 성장과 다양성을 스스로 증명할 것으로 기대되는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