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남자


도진기 | 미스터리

DETAILS

나를 아는 남자




한국형 추리소설의 부활을 선도한
현직 판사 도진기 작가의 새로운 시도

국내 미스터리 애호가가 꿈꾸던
‘추리소설의 완벽한 현지화’를 멋지게 실현해낸 작가 <시사IN>

2010년 신인 작가 도진기가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한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을 때 독자들은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컸다.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하는 본격 미스터리, 이른바 탐정소설을 창작하는 작가군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추리문학계에서, 저명한 외국 작가들의 걸작으로 눈이 높아진 마니아들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겠냐는 다소 비관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우리나라 작가도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니 놀랍고 반갑다’, ‘외국 작품 못지않게 재밌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국내 추리소설로는 드물게 순식간에 초판을 팔아치우고 연이어 출간된 시리즈를 모두 성공시키는 등 깐깐하기로 소문난 국내 추리소설 독자와 기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그 이름을 알렸다. 그동안 많은 작가와 독자가 바라왔던 한국 추리소설의 부활과 현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2년, 데뷔 3년차를 맞은 도진기 작가는 치밀한 플롯과 개성 강한 캐릭터, 외국소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트릭과 추리 과정, 그리고 현직 판사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보장된 전문성과 리얼리티를 무기로 데뷔작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보다 한국화된 추리문학을 선보이게 되었다. 총 7개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순서의 문제》는 기발한 트릭과 공정한 설정 그리고 ‘어딘가 악한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진구의 매력을 영리하게 배치해놓은 탐정소설이다.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진구의 모습에서 독자는 탐정소설이 주는 최고의 희열을 제대로 만끽하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 《나를 아는 남자》는 진구를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으로 보다 단단히 다져진 한국형 추리소설의 완성형을 선보인다. 한 사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우리 사회의 속물근성을 속도감 있는 필체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할 역작이다.
작가는 전작과 달리 별도의 시리즈 명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주인공 ‘진구’가 주축이 되기는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써 손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한 작가가 그려낸 편법과 거짓에 능한 천재 탐정 진구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 추리소설의 가장 진화된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함정과 놀라운 결말
도덕과 휴머니티를 후천적으로 학습한 추리 천재의 활약상

여자 친구 해미의 등쌀에 증권 회사 아르바이트 중이던 진구는 상사 민서의 뒷조사를 하게 된다. 민서가 바람을 피운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내 성희가 불륜의 증거를 찾아달라고 정식으로 의뢰한 것. 심부름센터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진구지만 이번 일은 영 꺼림칙하다. 상냥하고 매너 좋기로 소문난 민서와, 작은 일에도 발끈하고 목소리부터 높이는 성희의 부조화야말로 파경의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감청으로 민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성희는 별거 중인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달라 요구하지만 진구가 발견한 것은 차갑게 식은 민서의 시체뿐이다. 살해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진구는 즉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영장심문에서 기지를 발휘, 자유의 몸이 된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라는 경찰의 협박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민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민서가 남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과 성희의 의부증이 만들어낸 환상인 줄로만 알았던 내연녀의 등장으로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중·단편 연작소설 《순서의 문제》에서 평범하지 않은 도덕관념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진구는 파트타임이지만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등 일견 사회 질서에 동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범죄 현장의 증거를 조작하고, 처벌받지 않도록 교묘히 위조한 경찰공무증으로 사람을 속이는 등 천연덕스럽게 적법한 범위 내에서 거짓을 일삼는 건 여전하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그동안 독자에게 인정받은 작가의 장기, 즉 정교하고 독창적인 트릭을 소설 곳곳에 적절히 배치하고 있으면서도 인물 간의 갈등과 그들의 심리 변화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이 새롭다.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이는 결국 한 명도 없다는 군중 속의 고독과, 나약한 본성을 타인에게 들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가면 뒤에 숨어버린 현대인이 사건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추리문학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거짓 중 단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한국형 추리소설의 부활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